월간 지앤선

글 박미정 월간지앤선 편집장



현재 구글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계시는 이해민 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2년이라는 시간동안 구글에서 일하는 이해민 님과 구글, 동료 그리고 개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꽉찬 내공이 느껴지는 해민 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유한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현재 구글에서 Product Manager로 12년간 일을 해오고 있는 이해민 입니다. 동시에 사춘기 딸과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현재 구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구글의 검색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은 전세계 영화 관련 검색 결과를 담당했고, 최근에는 구글 북스라는 제품도 맡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구글에 지원하게 된 ‘계기’와 ‘입사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2006년 12월 말에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에 있다가 마치지 못하고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그당시 남편의 강한 권유로 회사 몇 군데에 지원했습니다. 마침 한국 오피스에서 Product Manager를 뽑는다는 것을 알고, 2006년 10월에 지원해서 무려 11번의 인터뷰를 보고 2007년 4월 23일 구글 코리아의 첫 번째 Product Manager로 입사를 했습니다. 당시 Deep Nishar라는 아시아쪽 전체 리드가 인도의 한 공항에서 저를 전화로 면접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안그래도 알아듣기 힘든 인도 영어인데 연결 상태도 좋지 않았거든요. 구글의 인터뷰 과정이 너무 길어서 귀국 후 우선 삼성 전자에 입사했다가 40여일만에 퇴사하고 구글로 옮겼습니다. 벌써 12년 전 일이네요.


구글은 다양하고 좋은 문화로 유명한데요, 해민님에게 가장 와 닿는 문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양하고 좋은 문화는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일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문화는 ‘사용자를 우선시하는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는 문화’이구요, 개인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가장 와 닿는 문화는 아무래도 ‘쓸데없는데 힘 덜 쏟는다’인 것 같네요. 만약 출퇴근 시간 눈치를 봐야 하고 회식에 안가면 불이익을 당하는 문화였다면 워킹맘으로서 12년 동안 버텨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일을 할 때에도 일을 위한 일을 한다기보다 move forward 하기 위해 일을 하는 문화라 제가 오롯이 업무는 진짜 일에만, 가정일을 할 때는 또 가정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제가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훌륭한 동료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구글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동료라기 보다 구글러라고 바꿔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처음 입사해서 한 달이 채 안되어 작은 서비스 하나를 선보였었는데 그 당시 어리버리하던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어준 분은 데니스 황이라는 구글의 웹 마스터였습니다. 저에게 먼저 오셔서 '한국분이 Product Manager로 왔다고 들었다'며 말 걸어주고 실제 론치 리뷰에 갔을 때 당시 리뷰어였던 Marissa Mayer로부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들었을 때 나서서 서포트를 해주던 기억은 지금껏 큰 고마움으로 남아있어요. 또 한 사람은 Ken Tokusei라는 저의 첫 번째 매니저입니다. Ken은 나중에 저를 '한국이라는 물에 그냥 던져 놓았더니 잘 살아남더라'라고 평했었는데요. 정말 기억에 남는 훌륭한 말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제가 어떤 제품을 놓고 장고를 하다가 질문을 하니까 “나는 너의 매니저지만 너의 제품에 대해 내가 커멘트를 할지언정 결정을 내릴 순 없다. "It’s your product, your baby. I trust your own decision"라고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구글의 Product Manager라는 직군을 제일 잘 설명해준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너무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기억에 남는 한 분만 더 꼽자면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일을 하고 있는 Hugo Barra입니다. 한국에 안드로이드를 론치하기 위해 거의 일 년을 24시간동안 connect 된 상태로 일을 함께 했었습니다. 당시 미리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 때문에 게임이 안드로이드 마켓(현재의 구글 플레이)에서 유통될 수가 없는 상태였고 한국의 결제 시스템 때문에 무료앱만 올라가 있었습니다. 당시 Hugo가 이 문제를 푸는게 가능하겠냐고 질문했을 때 저는 가능하다 했고, 정말 모두가 부정적이었지만 Hugo는 저를 믿고 태평양 건너 멀리서 모든 서포트를 다 해주었거든요. 한 번 이메일 스레드가 시작되면 100번 이상 이야기가 오고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저도 크게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함께 일하기 조금은 아쉬웠던 동료들 그리고 합을 맞춰나갔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하시는 답이 아닐 것 같지만... 함께 일하는게 너무 즐거웠는데 창업하거나 다른 이유로 구글을 떠나서 제가 아쉬움을 크게 느꼈던 분들은 있어도 다른 의미에서 아쉬운 적은 없었습니다. 프로토파이를 창업하신 토니님 또는 생활코딩으로 더 유명한 오픈튜토리얼의 숨은 공신 리체님 혹은 오픈서베이를 창업하신 송경림님 등은 정말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분들입니다. 제가 같은 Product Manager로서 참 존경하는 노정석님이나 김창원님은 함께 일했던 것 자체가 큰 배움이었습니다. 현재 SKT에서 승승장구 하고 계신 유경상님, 페이스북 코리아를 최근에 맡은 정기현님 등등 꼽자면 정말 많습니다. 더 좋은 길을 찾아 가시는데 제가 붙잡을 힘이 없었다는게 진심으로 아쉬울 뿐이었죠. 이렇게 말하고나니 구글은 정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배출했네요. 제가 일적으로 직접 접점이 있었던 분들만 언급했지만, 사실 깜짝 놀랄만큼 훌륭한 분들이 아주아주 많습니다. 함께 계속 일하지 못해 아주 아쉽지만 밖에서 날개를 펼치는 모습에 항상 큰 응원 박수를 드립니다. 


프로덕트가 출시되기까지 구글의 프로세스가 궁금해요, 구글에서는 이것만은 다르다 라고 생각하시는 프로세스가 있을까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구글에서 이것만은 다르다하는게 뭘까요? (곰곰). 제 경험만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놓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책들도 벌써 많이 나와있는 것 같습니다(라즐로 북 도서 등). 제품을 출시할 때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죠. 그리고 많은 경우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 이해관계 충돌은 key metric을 그래서 무엇으로 잡을건데, 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데요, 그럴 때 사용자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게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구글(코리아)에서 진행하는 여성 엔지니어를 위한 행사를 본 적이 있어요. 앞으로 구글은 여성 엔지니어를 위한 어떤 노력을 하게 될까요? 해민님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구글의 여성 엔지니어는 아직까지는 소수자입니다. 회사는 이를 아주 오래 전부터 인지했고 저는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 주제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회사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다양성이 회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수도 없이 많은 보고서로 나와있고, 구글은 다양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상 소수자의 목소리는 어느 일정한 수준의 양이 되기 전에는 들리지조차 않습니다. 만약 백 명의 사람들 사이에 한 명의 여성 엔지니어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무기명으로 어떤 피드백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마 한 명이라 아예 소리내는 걸 닫지 않을까요? 소수자가 안전하게 그 그룹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일정 양의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여 여성 엔지니어를 위한 첫 번째 노력은 사람 수를 늘리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구글 코리아에서는 여성 엔지니어의 수를 늘리기 위해 여학생을 위한 소프트웨어 캠프, 마인드 더 갭 프로그램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 여학생만 신경쓰냐는 의견도 많이 들렸는데요. 여성들은 자라나면서 참 많은 허들을 만나기 때문이거든요. 부모가, 친구가, 선생님이, 선배가 해줬어야 하는, 사회가 원래 남학생 여학생 구분없이 해줘야 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그룹에 대한 소개를 대신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쭉 이러한 노력을 계속 해 나아갈 것입니다. 아참, 중요한 것은 그렇다해서 여성 엔지니어만을 위해 채용 기준을 바꾼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성 엔지니어에 대한 현실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그런데 여성 엔지니어에 대한 현실이라기보다 개발자에 대한 현실이 10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회사가 많이 생겨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그래서 사내 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회사간 경쟁도 생겼습니다. 저는 여성,남성 가릴 것 없이 개발자에 대한 현실은 더 나아졌다고 판단하는데 물론 생각보다 (매우) 느립니다. 그리고 아직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더 나아져야 하는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동시에 개발자의 실력 또한 함께 올라가야겠죠. 회사가 훌륭한 인재를 좋은 조건으로 채용하고 그래서 인재도 많이 몰리고, 그러한 회사가 늘어나고 인재들도 본인의 특장점에 맞는 곳으로 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느리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현실'이 나아지려면 회사도 개인도 그리고 사회도 모두 노력해야 하는 복합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여성 엔지니어로 돌아와서, 그 수가 늘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같은 여성 엔지니어로서, 어떤 행동과 목소리를 내면 좋을지 의견이 궁금해요!

간단한 행동이 가능하도록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2015년 두 번째 WTM(Women Techmakers)에서 제가 참석자들께 어떤 부탁을 했었냐면, 각자가 적어도 5명의 멘티를 두라고 했습니다. 수를 늘리자는 의미였구요. 나 스스로 멘토가 된다면 그 만큼의 책임감과 그로 인한 성장 또한 함께 기대할 수가 있어요. 근래 산뜻하고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는 여성 엔지니어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한 활동을 새롭게 기획하거나 함께 동참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스스로가 멘토가 될 수 있다면, 5명 정도는 키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면, 나의 자세도 생각하는 범위도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는 딸도 비슷한 진로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사심 가득 이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 전 딸이 어떤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요, 숫자 자체를 늘리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 합니다.


외국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반 동안 미국에 있었고 2018년부터 다시 미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001년엔 박사과정에 진학하고자 태평양을 건넜고 지금은 회사 내에서 로케이션을 옮기면서 다시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예전과 지금의 저의 역할이 달라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유학생으로서, 생활 전반적인 것보다는 제가 만난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미국에서 놀란 것은 제가 컴퓨터를 전공을 한다고 대답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닥 놀라지 않고 곧바로 '어느 분야?'라고 질문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컴퓨터 전공합니다' 혹은 '전공했습니다' 하면 아 "여자가" "컴퓨터를" 전공하셨군요라고 이야기를 들었죠. 열 번에 아홉 번은 그렇게 답을 들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불편했죠. 미국에 와서 정말 자유로움을 느낀 포인트였습니다. 약간 반대의 경험도 있는데, 제가 한국인이고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반응입니다. 특히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본 경험이 있는 아시아쪽 출신이 그런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을 한 한국 여자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것이냐. 나는 한국은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과 시댁 때문에  다 그만두어야 하는 문화인 줄 알았다" 이러한 반응 또한 신기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는 일부 소재가 되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라고 답을 했지만 씁쓸했던 것은 맞습니다. 대중문화 내 나타나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된 계기였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굉장히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했습니다) 일도 한국에 있을 때와 비슷하고, 생활도 한국에 있을 때와 비슷해서 (한국에서 좀 특이하게 살았다고 해두겠습니다) 뭐가 다를까 한참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느끼는게 더 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두발 복장에 대한 규제가 있긴하나 매우 자유롭다, 굉장히 독립적인 개체로 존중해준다, 대신 본인이 다 알아서 해야 한다 등 제가 느끼는 것보다 아이들이 느끼는 생활적인 차이가 훨씬 큰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 외, 활동하시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Yes and No 입니다. 회사 일과 가정 일 만으로도 저의 시간이 너무 꽉 차서 마음 뿐이고, reactive 하게는 최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나 활동에 대한 멘토링 혹은 서로 필요로하는 네트워크를 연결해드리는 일, 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역할들을 합니다. 그러한 행사들 홍보를 좀 해보자면 매년 봄에 열리는 소프트웨어에 물들다, 여름에 열리는 오픈핵, 모교 학생들 동아리 활동 등이 있습니다. 종류는 크게 가리지 않지만 여성개발자를 위한 분야, 그리고 학생들의 소프트웨어 교육에 관한 분야는 제 시간이 닿는 한 도와드리려 합니다.


(만약)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으신가요?

책을 정말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취미를 말하라면 아주 예전부터 "독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감히 책을? 하다가 2015년 육아휴직 때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중간중간 생각나는 메모만 하고 있고 주제는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아마 영원히 이렇게 바뀌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근래 구글 북스 제품을 맡게 되면서 또 다른 시점에서 책이라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경단녀도, 휴직자도, 백수도, 전업맘도, 아는 분들은 아는 F2 비자 생활도, 이과 여학생도, 유학생도, 공대 여학생도, 석박사 과정도, 아이들 출산도, 학부모도, 정부출연기관 생활도, 구글 Product Manager도, 이민자도 해보아서 나눌 이야기는 많을 듯 합니다. 굳이 책이 아니어도 그냥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근래는 많이 합니다.


최근 감명깊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고백하자면 저는 여러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권을 아주 오랫동안 읽습니다. 미국으로 올 때 다섯 권만 들고 왔는데 그 중 하나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헤세의 책입니다. 그렇게 계속 읽다보면 행간이 보이고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보다 훨씬 복잡다난한 이야기를 작가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렇지 않은 종류도 있어요. 최근에 손에 들었던 '오래' 읽는 책 중에서 소설이 아닌 것은 [동행]이라는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입니다. 소설 다음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자서전인데요 그 중 최고봉으로 꼽습니다. 이유는 그 복잡한 시대상을 어쩌면 저렇게 속도감있게 그리면서도 시점을 잃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감탄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을 저보고 쓰라면 과연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요. 물론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희호 여사의 큰 발자국은 제가 본받을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학교 때 친구가 선물해준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딩]도 다시 읽고 또 읽는 비소설 책 중 하나입니다. 제가 십년 혹은 이십 년 넘도록 읽는 소설들은 [사람아 아 사람아], [회상],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 [모모] 등등입니다. 아, 중학교 때엔 무협지 [영웅문]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적이 있는데 절판되었던 고려원 출판 영웅문을 몇년 전 중고로 비싸게 구해서 엄청나게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3부에서 3류 소설화 되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어릴 때 좋아했던 작품을 그대로 다시 만나니 좋더라구요. 그 외 시집을 항상 곁에 두고 삽니다. 스트레스 받을 땐 외우는 시를 손글씨로 적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하니까요.


평소 새로운 분야 혹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제가 하는 일의 성격상 트렌드를 파악하거나 큰 줄기를 잡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책을 삽니다. 그리고 읽습니다. 너무 간단한가요? 그런데 책은 아주 최근 동향을 빨리 전달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 트렌드는 여러 보고서를 계속 읽습니다. 구글 내에서 가능한 보고서도 있고 외부 보고서도 유료든 무료든 많이 읽습니다. 몇 가지 저의 경험이 이럴때 큰 도움이 되는데요. (1) 박사과정 때 습득한 research methodology 부분이 데이터를 정성적으로 해석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2) 또 하나는 박사과정 당시 읽고 토론했던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등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가 여러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기술 부분은 주로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냅니다. 남편이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것은 서로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남편의 성향상 혹은 직업상 기술의 최전선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거든요.

참, 책을 읽을 때 한 가지 팁은... 제가 굉장히 신경써서 읽는 부분이 저자후기입니다. 저자후기를 읽으면 책을 읽을 때 큰 그림을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요.


같은 분야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시대가 달라서 함부로 후배들에게 훈수를 두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만 제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은 공유할 수 있겠네요. 까닭없이 따라다니는 노력 말고 새로운 개척을 하는 노력에 무게중심을 두면 좋겠다는 것.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이 전달하는 느낌이랑 비슷하네요. 또한 가능하다면, 곁을 돌아보고 내가 사는 동네가,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끊임없이 관심을 두는 것.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해민님의 멘토 혹은 롤모델이 있나요?

많습니다. 본인들은 잘 모르지만 정말 많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모든 분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그리고 부모님, 가족 등 제 주변에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왈 삼인행이면 필유아사언이라고 했잖아요.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여성 엔지니어들 중 찾아보려다가 좌절했던 적이 있는데요. 혹은 심지어 워킹맘의 멘토도 제가 지향하는 바를 걷고 있는 분을 발견못해서 참 힘들었었고, 그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공이라는 것도 내가 정의하면 되고 내가 살고자 하는 삶도 내가 정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 멘토, 혹은 롤모델의 범위가 오히려 확 넓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지금까지의 질문 중 가장 어렵네요. 자이언티 노래에도 나오잖아요. 우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합시다!